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한국 스마트팩토리 어디까지 왔나 | 포스코·LS산전, 생산성 ‘쑥쑥’ 고도화 中企 격차축소 안간힘…기술·인력 발목

  • 김경민,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7.07.07 14:12:56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통 제조업 경쟁력이 한계를 맞자 국내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스마트팩토리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LS산전 청주공장에선 주요 업무를 로봇이 도맡아 한다. 사진은 무인운반차가 부품을 운반하는 모습(아래).

LS산전 청주공장에선 주요 업무를 로봇이 도맡아 한다. 사진은 무인운반차가 부품을 운반하는 모습(아래).

▶LS산전 청주1사업장 찾아가보니

▷사람 없이 무인운반차가 알아서 ‘척척’

지난 6월 19일 찾아간 충북 청주산업단지의 LS산전 청주1사업장은 언뜻 보면 일반 공장과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겉보기엔 커다란 박스 같은 2층짜리 공장에 스마트팩토리다운 특별한 첨단시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1층 입구에 배치한 무인 운반차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생산라인 곳곳에 위치한 무인 운반차들은 생산라인 사이 통로 바닥에 붙은 청색 테이프를 따라 움직이면서 상자에 담긴 부품을 열심히 실어 날랐다. 프로그래밍된 명령에 따라 각 부품을 라인으로 운반하고 완성된 제품을 포장라인으로 착착 이동시킨다. 사람이 굳이 차를 운전하거나 조정할 필요가 없다. 제품이 부족해질 때를 스스로 인식해 이동하면서 꼼꼼히 제 역할을 해낸다. 사람이나 물건과 부딪히는 등 물리적 충격이 느껴지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경고음까지 울리는 ‘똑똑한 로봇’이다.

공장 1층에선 LS산전 주력 제품인 저압차단기를 생산한다. 연간 무려 2600만대가량 산업용 차단기를 생산하지만 정작 사람은 별로 없다. 생산라인마다 사람이 1~2명씩만 있을 뿐 대부분 공정은 기계가 대신한다. 공정마다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설비자동제어장치)가 설치돼 있는데 각 공정의 PLC가 생산 관리 시스템인 MES(제조 실행 시스템)와 연계돼 생산 효율을 높인다. MES 허브는 각 공장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통신 중개 역할을 한다.

제품 포장라인 역시 완전 자동화돼 있다. 중량감지센서를 통해 포장의 정확도를 자동으로 검출하는 게 특징이다. 생산라인마다 다양한 로봇이 있는데 그중에서 거대한 크기의 포장 로봇이 압권이었다. 스스로 품목을 판단한 후 크고 작은 상자에 제품을 넣어 포장한다. ERP(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제품 정보를 받아 박스에 정보 관련 스티커를 붙이는 역할까지 해낸다.

전기회로에서 부하를 개폐하는 전자개폐기 생산라인인 2층 시설도 볼만하다. 연간 1200만대 전자개폐기를 생산하는 2층 역시 스마트 생산라인이 잘 갖춰져 있다. 대부분 생산 공정을 로봇, 기계가 대신한다. 작업자는 모니터를 통해 해당 조립라인 구석구석에 설치된 PLC를 보고 데이터를 확인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생산라인 한편에선 카메라 플래시처럼 번쩍이는 조명 빛도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완제품에 카메라 조명을 터트려서 품질을 꼼꼼히 검사하는 비전 시스템(영상기술) 로봇이다. 이 과정은 몇 년 전만 해도 온전히 사람 몫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일일이 검사하다 보니 오류가 잦았고 이를 로봇이 대체하면서 불량률을 대폭 줄였다.

현장을 안내한 진성옥 LS산전 청주1사업장 생산기술팀장은 “생산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된 데이터는 MES를 통해 생산성 개선 데이터로 활용한다. 1개 라인에서 하루 평균 50만건 이상 데이터가 나오는데 이를 모으면 빅데이터가 되는 만큼 품질 관리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S산전 청주1사업장 G동은 국내 스마트팩토리 대표 사례로 꼽힌다. 부품 공급부터 조립, 시험 포장 등 전 라인에 걸쳐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보통 스마트팩토리 라인이 기초, 중간1, 중간2, 고도화 등 4단계로 나뉘는데 LS산전 청주사업장은 중간 2단계 수준으로 국내 기업 중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다. 중간 2단계는 설비 제어가 자동화되면서 실시간으로 공장 제어가 가능하고, 공장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단계를 의미한다.

LS산전은 2011년부터 200억원 이상을 투자해 단계적으로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왔다. 원래 대부분 생산 공정을 사람이 맡았지만 ICT, 자동화 기술을 접목하면서 다품종 대량생산은 물론이고 맞춤형, 소량 다품종 생산도 가능한 구조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생산성도 대폭 높아졌다. 1층 저압차단기 라인의 경우 당초 38개 품목의 1일 생산량이 7500대 수준이었지만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한 이후 2만대로 대폭 늘었다. 덩달아 에너지 사용량도 60% 이상 절감됐고 불량률도 14PPM, 즉 100만개 중 14개 수준으로 급감했다.

▶스마트팩토리 도입한 대기업은

▷한화, IoT 플랫폼 개발

포스코는 지난 2015년 5월 광양제철소 후판(선박 등을 만드는 데 주로 쓰는 두께 6㎜ 이상 철판) 공장을 스마트팩토리 시범공장으로 선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이후 약 3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뒤 그해 7월부터 스마트화에 본격 돌입했다.

스마트화 선언 직후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 곳곳에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카메라부터 설치했다. 스마트팩토리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매일 1TB(테라바이트)가 넘는 데이터가 쌓인다. 고로에서 만든 쇳물 불순물을 없애는 제강 공정 과정에선 하루에 데이터 500만개가 생성된다. 액체 상태인 용강을 고체로 만드는 연주 공정 과정에선 7000만개, 고체 상태인 반제품을 강판으로 만드는 압연 공정에선 무려 300억개가 모인다. 포스코는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를 자체 개발 플랫폼 ‘포스프레임(PosFrame)’을 이용해 저장하고 분석한다. “포스프레임의 데이터 분석 기능을 활용하면 불량품이 나왔을 때 원인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재발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포스코 측 얘기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만큼 불량 제품이 후공정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빅데이터와 IoT 활용 효과는 실제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기 전인 2015년 상반기에 비해 품질 부적합률이 20% 줄었다. 비용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스마트센서를 활용해 설비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등 운영 효율성을 높인 결과 지난해 비용을 51억6000만원가량 절약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설비를 중단하는 사례도 줄어 설비 가동률도 높아졌다. 황호선 포스코 광양제철소 스마트팩토리팀장은 “기존에 육안으로 확인, 판단하던 작업이 빅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어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판단의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품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IoT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생산 효율성을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례로 고객사가 원하는 크기로 후판을 자를 때 영상 데이터를 활용,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은 제품을 자동으로 감지해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이 도입되면 사람이 계속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생겼을 때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돼 업무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한화그룹도 스마트팩토리 핵심 기술인 산업용 IoT 플랫폼을 자체 개발해 첨단 항공기 엔진 공장에 적용하기로 했다. 개별 설비에 첨단 센서를 붙여 기계 상태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기계가 고장 날 가능성이 있을 때 사전에 감지한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화학업계 최초로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할 예정이다. 일례로 유해가스 실시간 감지 시스템을 통해 사람이 아니라 설비에 부착한 기기로 밀폐공간의 유해가스를 측정한다. 이를 통해 필요하면 작업 중단, 대피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험 예지 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진동이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압축기 상태를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예전 사고 사례를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술을 접목해 사고를 예방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위아는 독일 지멘스와 손잡고 2018년 경기 안산 반월시화단지에 시범 스마트팩토리를 세우기로 했다. 이 공장을 산업용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융합 시스템 등 첨단기술력을 시험하는 테스트 보드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은 빅데이터와 IoT를 활용해 스마트팩토리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후판 공장 압연라인(위)과 운전실(아래).

포스코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은 빅데이터와 IoT를 활용해 스마트팩토리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후판 공장 압연라인(위)과 운전실(아래).

▶중소기업도 효과 톡톡

▷새한텅스텐·동양피스톤 등 눈길

스마트팩토리 도입으로 효과를 본 중소기업들도 있다.

자동차 전구용 필라멘트 생산업체인 새한텅스텐은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통해 글로벌 조명 ‘빅3’ 업체인 필립스, 오스람, GE에 모두 부품을 공급하는 알짜기업으로 거듭났다. 2014년 실시간 MES와 ERP 시스템을 도입하고 정밀 비전 시스템까지 구축하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필라멘트는 제조 과정 중 한 시간 간격으로 공정검사를 해서 원하는 형상인지 확인해야 한다. 크기가 워낙 작아 사람이 이를 디지털 투영기에 올려놓고 확대해서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게다가 필라멘트 길이와 코일 턴수, 간격 등 15가지 검사 항목 측정값이 나오면 작업자가 기록지에 일일이 적어야 했다. 항목별 숫자들을 수기로 입력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류도 잦았다.

하지만 정밀 비전 시스템을 도입한 후 이런 불편함이 사라졌다. 카메라 장치에 필라멘트를 올려놓으면 카메라가 찰칵하는 순간 항목별 측정값이 MES에 자동 연동돼 정확성을 높인다. 각종 검사를 사람이 아닌 카메라가 대신하는 ‘공정검사 입력 자동화’로 기존에 5분 걸렸던 검사시간이 30초로 대폭 단축됐다. 새한텅스텐 관계자는 “작업자들이 일일이 수기로 했던 기록을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경영 정보 시스템으로 대신하면서 작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경기 반월시화산업단지에서 자동차 엔진용 피스톤을 생산하는 동양피스톤도 스마트팩토리 도입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동양피스톤은 업종 특성상 수작업이 많아 한국인 근로자들이 업무를 꺼려 했다. 어쩔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이 수작업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하기 위해 공정라인마다 센서를 설치해 온도, 공정률 등 모든 공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불량품이 나오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떤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하고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산시설 전체 가동을 멈추고 문제점을 하나하나 점검해야 했던 것과 달라진 풍경이다. 덕분에 생산성이 늘었고 불량률도 대폭 줄었다. BMW, GM,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피스톤을 납품하면서 수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머지않아 해외 공장 설비도 사물인터넷으로 통합, 관리할 계획이다.

▶여전히 갈 길 멀어

▷핵심 기술 확보 나서야

기업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은 초라하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선두주자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의 스마트팩토리 기술 수준은 70.5에 불과하다. EU(86.8점), 일본(81.9점)에 비해서도 한참 뒤처진다. 이유진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한국의 생산설비와 네트워크 기술은 뛰어나다. 하지만 센서와 RFID(전자태그) 등 스마트팩토리 핵심 기술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당히 뒤처진다”고 진단했다. 장경석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또한 “한국 스마트팩토리는 외국산 솔루션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기업, 학계가 협력해 스마트팩토리 기반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성과 위주 추진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 지원책에 힘입어 스마트팩토리 도입 업체는 늘었지만 이 중 상당수는 기초 단계에 머물고 있다. 단순히 도입 업체 숫자만 늘리기보단 스마트화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스마트팩토리 도입에 속도를 내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비용 부담을 우려해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꺼려 하는 기업들도 부지기수다. 박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고도화된 스마트팩토리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스마트팩토리 전문인력을 양성해 생산성 향상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15·창간호 (2017.07.05~07.1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